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체스터 니미츠 (문단 편집) === [[이순신]] 관련 일화 === * 한국인들에게는 재미있게도 니미츠 제독이 1944년 한 브리핑에서 '''[[이순신]]'''을 언급한 적이 있다. 자신들이 역사적으로 타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적이 없다는 일본측의 선전을 위트있게 반박하면서 나온 내용이다. 전투의 날짜, 교전의 내용과 전과 수치 등을 볼 때 [[부산포 해전]]을 언급한 것으로 추정된다. 평소 독서에 관심이 많던 니미츠 제독인데다 일본과 바다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었으므로 적국과 관련된 역사를 많이 공부했을 것이고, 그 중 임진왜란의 사례를 보았을 가능성이 높다. > 강력한 연합군 함대[* 당시 조선과 명나라가 합세해 일본과 맞섰기에 "연합군 함대"라고 칭한 것이다. 정작 부산포 해전에서는 조선 수군이 단독으로 일본군과 전투했지만.]가 한국 동남부에 위치한 부산항 입구에 정박한 일부 일본 함대를 공격하여 적함 80여척 중 27척을 격침시키고 나머지는 도주했다. 이후에 벌어진 전투에서도 전투함과 수송선을 포함한 70여척의 일본 함선이 이 연합국 함대에게 포착되어 섬멸되었다. 일본군 함대에 가해진 이 강력한 타격들은 한국에 주둔한 일본 육군을 고립시키고 본토 기지에서 차단시켰다.(잠시 뜸을 들이고) 며칠간 진행된 이 해군 작전은 '''1592년 여름'''에 수행되었으며, 연합군 함대를 이끈 지휘관은 '''한국의 이순신 제독(the Korean Admiral Yi Sun-Sin)'''이었다. 이처럼 역사적으로도 일본 해군은 이미 큰 패배를 맛보았던 것이다. >---- > - 1944년 10월 9일, 진주만 미 해군 기지에서 시행한 브리핑 중에서. 1944년 10월 10일자 [[뉴욕 타임즈]] 기사에서 인용. [[https://www.nytimes.com/1944/10/10/archives/nimitz-startles-reporters-with-communique-of-victory-off-korea-adds.html|#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